3 공대에서의 방황과 배움의 즐거움

그리고 저는 2000년도 고려대학교 공학부에 입학하였습니다. 저는 그 당시 학교장 추천 수시모집전형으로 합격하여 일찌감치 입시에 대한 부담을 다소 떨쳐버리고 입학할 때까지 열심히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어마어마한 공부량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학에 가면 학업에 대한 부담감을 떨쳐버리고 취미생활과 동아리 활동을 여유롭게 하면서 조금씩 공부하면 되는 줄 알았지만 현실적으로 대학교는 보다 폭넓고 깊이있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 가는 곳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그에 대한 반발심리로 신입생 시절에는 엄청난 학업량이 너무 부담되었던 나머지 아예 진도를 놓친 후 따라잡는 것을 포기하도 하였습니다. 일반화학, 일반물리, 통계학, 미적분학, 공업수학, 영어 그리고 각종 교양수업등 공대 1,2학년은 결코 녹록치 않았습니다. 저는 이 시기에 공학을 배우기 위해 방대한 기초지식을 습득 하면서 일종의 일탈과 방황을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과학에 대한 원대한 꿈을 갖고 대학에 진학했을지라도 때때로 이러한 슬럼프가 찾아올 때가 있을 것입니다. 제가 이 시기를 잘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과학을 배우며 호기심을 충족시키던 그 즐거움을 떠올렸고 제 꿈을 다시 구체적으로 그렸기 때문입니다. 처음 화학과 생물학을 배울때 공유결합을 이해하려 전자쌍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그려보고, Central Dogma를 배우며 DNA의 전사(transcription)와 번역(translation)을 알아가며 어렵고 복잡했지만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에 흥분했던 기억이 선합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이렇게 새로운 것을 배움에 애틋함과 간절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배운것이 입시와 직결된다는 생각때문인지 더 열심히 외우고 적용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이러한 간절함, 그리고 배움의 즐거움을 대학교에 들어오면서 잠시 잊고 있었고 다른 즐거운 것들(?)에 정신이 팔려 정작 학생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한 채 살아갔던 것 같습니다. 어쩄든 저는 군대에 다녀오고 이러한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을 즐기기 시작하면서 성적도 오르고 공학에 대한 흥미도 커지고, 신경과학자에 대한 구체적인 꿈을 키웠습니다. 전기회로, 전자회로, 물성공학, 반도체공학, 데이터구조, 컴퓨터언어, 인공지능 등등 수많은 공학과목은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각각 현대 응용과학의 결정체를 배우고 있다는 점에 흥미를 갖고 배우려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4년간 전기전자전파공학을 공부하고 어느덧 졸업할 시기가 다가왔고 저는 진로고민을 심각히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인간의 신경계를 연구하는 과학자가 되기 위해 공대에 왔는데 막상 제가 배운 것들은 회로이론, 반도체, 컴퓨터 언어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공학적 지식과 더불어 인간의 신경계를 좀더 자세하고 총체적으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곧바로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진학하였습니다. 저는 연구에 대한 갈망이 있었기 때문에 일반 MD과정이 아닌 복합학위과정(MD/PhD)을 택하여 진학하였습니다. 그 당시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할 때는 파편처럼 흩어져있던 공대에서 배운 과목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미처 몰랐지만 훗날 이러한 공학지식이 빛을 발할 때가 찾아오게 됩니다. 저는 우리가 배우는 모든 것이 결국 어떠한 유형으로든 미래에 효용을 발휘하게 된다고 믿습니다.